따뜻한 말 한 마디의 힘드림카 307호 한경열 씨
장애유형 : 지체장애, 307호 수리내역 : 알터네이터, 리어허브·베어링 외, 따뜻한 말 한 마디의 힘, 드림카 307호, 한경열 씨 이야기장애가 찾아왔을 때 스스로 시선을 확대하고 주변 이웃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겼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경열 씨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어릴 적 시작된 장애, 오랜 후원을 계기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까운 곳의 사람들을 두루 챙기고 보듬는 경열 씨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부모 마음을 헤아리다, 올해 64세인 경열 씨는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2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장애를 갖게 된 경열 씨의 치료를 위해 부모님은 전답을 모두 팔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모든 걸 정리하고 서울에 정착했던 부모님의 헌신적 사랑을 경열 씨는 자신이 부모가 된 후에야 조금씩 깨달았다고 합니다. “자식은 성장해야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고, 부모 역시 자식을 키우며 더욱 성장하는 것 같아요. 부모가 되고 자식을 키우다 보니 어릴 땐 몰랐던 부모님의 사랑을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어릴 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 왜 나만 아팠을까, 이런 말로 부모님께 반항한 적이 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참 가슴이 아픕니다.”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부모님 덕분에 경열 씨는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대학교까지 졸업했습니다. 그중에서 도 중학교 시절은 경열 씨의 내면이 크게 성장한 시기였습니다.맛있는 게 있으면 나보다 배고픈 친구의 입에 넣어주고, 잘 아는 게 있으면 모르는 친구에게 가르쳐주고,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시절 경험과 마음가짐은 지금까지 경열 씨가 살아가는 바탕이됐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더 단단해지고 주변에 약한 사람들을 지나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했어요. 저 역시 어린시절 인생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과정을 거쳤으니까요.” 경열 씨는 주변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지 못해 내내 아쉽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제야 돌아가신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됐다는 경열 씨는 앞으로도 후회 없이 살기 위해 가족과 이웃을 따스하게 다독이며 살고 싶은 소망을 내비쳤습니다. # 오랜 후원이 일터로 이어지기까지 현재 경열 씨는 장애인 편의증진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경열 씨는 장애인의 복지증진과 장애인편의시설의 적합성 검사를 추진하는 일을 합니다. 평생 사업만 해오던 경열 씨가 장애인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를 걷다가 우연히 장애인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시설을 발견했습니다. 저 역시 장애인이고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무작정 들어가 봤죠. 그리고 시설이 운영되는 모습을 본 뒤에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가 중국에서 식품공장을 경영하던 터라 식자재 후원을 시작한 거죠. 그렇게 8년간 후원을 하면서 시설의 관계자들과 자연스럽게 교류가 많아졌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가까이에 사는 이웃들을 살펴보게 되고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경열 씨는 관계자들과 소통하면서 삶의 목표가 조금씩 바뀌었다고 합니다. “저는 장애인이면서도 ‘장애인’이라는 세 글자를 싫어했어요. 하지만 긴 시간 교류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제 생각이 바뀌었고, 저와 같은 입장의 장애인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앞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고민 끝에 경열 씨는 중국에서의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교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자신이 후원하던 시설의 센터장이 됐습니다. 바라던 일을 시작했지만 힘든 순간도 있었고, 사업할 때에 비해 수입이 줄어 난처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자식이 둘인데요. 장애인복지 관련 일을 시작하면서 한창 힘들기도 하고 수입이 줄어 어려워할 때 아들이 저를 응원해주더라고요. 자기가 생활비를 드릴테니 아버지는 하고 싶었던 일 충분히 해보시라고. 그 말에 얼마나 힘이 났는지 몰라요.”이웃과 더불어 살고픈 마음을 헤아려준 가족들 덕분에 경열 씨는 센터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가족이자 친구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고 있습니다. # 한 생명을 살린 특별한 여행, 경열 씨에겐 이 일을 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여긴 경험이 있었습니다. 센터에 오가는 회원 중 한 분이 주변에 유난히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궁금해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회원이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원래는 비장애인이었는데 오랫동안 직장 생활한 퇴직금을 다 잃게 되고, 그 충격으로 쓰러져 장애인이 됐다더라고요. 그 분 사는 집에도 가봤는데 아주 깜깜한 지하방이었어요. 너무 어두운 곳에 사셔서 한 번씩 반찬도 사다 드리고 아픈 데는 없는지 수시로 찾아가곤 했어요.” 그러던 중 경열 씨는 회원의 고향을 알게 됐고, 고향에 함께 방문해 옛 추억도 되살리고 힐링하고 돌아오자며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작은 마을에 들러보고 하루 묵고 오게 됐다는 경열 씨. 그날 회원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고 합니다. “그분이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나쁜 마음을 먹었나 봐요. 날짜까지 정해놓고 더는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마침 제가 고향에 모시고 간 날이 그 날짜였던 거죠. 그렇게 깊은 상처를 털어놓고 서로 위로했습니다. 이제는 나쁜 마음 먹지않고 잘 지내세요. 제가 한 생명을 살린 거겠죠?” 그 특별했던 여행에서 경열 씨는 타인에게 말을 걸어주고, 작은 관심을 보여주기만 해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 드림카 307호 이야기, 경열 씨가 특별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건 두 다리를 대신 해주는 자동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열 씨의 출퇴근을 책임지고 지원센터를 이용하는 회원들을 방문하거나 필요에 따라 이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자동차입니다. “자동차는 저에게 전기와 마찬가지예요. 우린 이제 전기 없이 살 수 없잖아요? 장애인에게 자동차는 전기 못지않게 중요하고 필요한 물건입니다.”그렇게 소중한 자동차가 너무 열심히 달려서일까요? 지난해부터 주행 중에 차체가 긁히는 듯한 소음이 크게 들려왔습니다. 한 번씩 정비소에 들러 점검을 받았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워 아주 급한 것만 고치며 다음을 기약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운전할 때마다 늘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랬던 자동차는 드림카 프로젝트를 만나 튼튼하고 안전한 차량으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정비된 차를 돌려받고 운전해본 경열 씨는 기분이 날아갈 듯 좋다고 말합니다. “차를 고치니까 제일 좋은 건 제 기분입니다! 기분이 정말 좋아요! 긁히는 듯한 소리가 안 나니 마음이 정말 편해지네요.” 튼튼해진 차량으로 오랜만에 아내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경열 씨. 센터의 회원들과 이웃을 챙기느라 한동안 못 간 여행을 아내와 단 둘이 떠나고자 합니다. “이웃을 챙기는 만큼 가족도 잘 챙기며 살아야겠죠. 제 삶의 목표를 이뤄가는 데 드림카 프로젝트가 큰 힘이 됐습니다. 지원해주신 삼성화재애니카손사와 한국장애인재단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