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런

장애유형 : 청각장애 / 참가자 : 15명
협력기관 : 한국농아인협회 서울특별시협회 중구지부

퍽퍽한 인생! 퍽으로 신나게
고요한 세상에 ‘퍽(puck)’을 날리다
남산타워가 바로 보이는 명동의 골목길을 구불구불 올라 남산쉼터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한국농아인협회 서울특별시협회 중구지부(이하 지부)의 슐런 교실이 열릴 예정입니다. 슐런 교실이 열릴 건물의 3층에는 일찌감치 도착한 참가자들이 몸을 풀며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잔잔한 현장은 슐런이 시작되면서 떠들썩한 경기장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퍽 한 번 날려보실래요?

지부에서 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슐런(Sjoelen)’은 다소 낯선 종목입니다. 네덜란드 전통 게임인 슐런은 슐박(Sjoelbak)이라 불리는 커다란 보드에 뚫려있는 4개의 구멍으로 나무토막인 퍽(puck)을 밀어 넣는 게임입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퍽을 쥐고 슐박 앞에 서서 최대한 많은 퍽을 구멍으로 통과시키기 위해 팔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운동입니다.

무조건 많이 넣는다고 우승이 아닙니다. 4개의 구멍에 골고루 넣어야 합니다. 한 쪽에만 많이 넣으면 점수를 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계속 점수 계산을 하면서 퍽을 밀어야 합니다. 그렇다보니 게임 결과에 반전이 거듭되고 간발의 차로 승패가 갈려 긴장감이 말도 못합니다. 평균 연령대가 높은 지부 참가자들에겐 은연중에 치매 예방도 되는 느낌입니다.

슐런 교실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이 순서를 정해 경기에 참여합니다. 슐박 옆에는 심판 역할의 참가자 두 명이 앉아 경기를 지켜봅니다. 순서를 기다리는 참가자들 중에 자리에 앉아 쳐다보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슐박 주변에 모여 응원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즐겁게 슐런을 즐깁니다. 한 명씩 경기를 마칠 때마다 다함께 수화로 박수를 칩니다. 고요한 가운데 떠들썩함이 느껴지는 활기찬 풍경입니다.

매일매일 하고 싶은 운동 ‘슐런’

지부에서 운영하던 체육 프로그램이 이렇게 반응이 뜨거웠던 적은 없습니다. 공해가 심한 서울 한복판에 위치하다 보니 미세먼지 농도가 높거나 날씨와 공간에 제약이 많아 체육 프로그램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슐런은 그런 문제도 요리조리 피해가는 기특한 종목입니다. 실내에서 열리기 더위와 미세먼지를 피할 수 있고, 공간적 제약에서도 자유롭습니다.

고요한 가운데 다시 한 번 떠들썩한 기운이 휩쓸고 지나갑니다. 잘 하고 싶었던 마음이 앞섰던 걸까요? 힘을 줘 퍽을 미는 바람에 반대편 슐박으로 퍽이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 왁자지껄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미정 담당자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참가자들은 비록 연령이 높은 편이지만 평소 체육활동에 대한 욕구를 은근히 내비쳤습니다. 그랬던 차에 슐런을 시작하며 무기력했던 참가자들이 활기를 되찾고, 소근육이 발달함에 따라 자세가 반듯해졌습니다. 함께 운동하는 참가자들끼리 친목을 다지며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도 참 보기 좋습니다.

이 즐거운 순간들이 모쪼록 오래 갔으면 합니다. 참가자들의 웃음과 건강한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런 소망을 담아 오늘도 힘차게 퍽 한 번 날려볼까요?

담당자 인터뷰
김미경 담당자
Q. 이번 체육 프로그램 지원 사업은 어떤 계기로 지원하게 됐나요?
A. 저희 지부 참가자 중에는 어르신이 많은데요. 규칙적인 운동이 꼭 필요한 분들인데도 비장애인이 하듯 다양한 운동을 시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또 직업을 갖기도 어려워서 낮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때문에 건강을 증진시키면서 무기력한 생활을 즐겁게 도모하기 위해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Q. 슐런 교실을 운영하면서 참가자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 참가자들이 슐런을 하면서 성취감 고취가 말도 못 하게 높아졌어요. 예전 체육 프로그램으로 스트레칭 중심의 운동을 했는데 약간 지루해한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슐런은 달라요. 굉장히 적극적으로 경기에 참여하세요. 수업이 없는 날도 시간이 맞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연습을 해요. 슐박과 퍽만 준비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열심히 연습해서인지 지난 6월에 참여한 대회에서 입상한 분도 계세요.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A. 청각장애인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 운동을 할 때 위험을 감지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요. 그래서 실내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앞으로도 다양한 종목을 발굴해볼 생각이에요. 홈앤쇼핑과 한국장애인재단의 지원이 오래도록 이어진다면 장애인들이 더욱 다양한 운동에 도전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강사 인터뷰
김지혜 강사
Q. 청각장애인의 슐런 강의를 하며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슐런은 전문용어가 많고 점수계산이 복잡한 종목입니다. 그런데 우리 참가자들이 청각장애가 있고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최대한 수업을 재미있게 구성하는 데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게임을 하듯 수업을 짜고, 간단한 선물도 준비하는데 굉장히 좋아하세요. 경기 설명을 할 때 사회복지사분들이 수화를 도와주시는 점도 도움이 많이 되죠.
Q. 슐런 교실에 참여한 참가자들의 처음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A. 처음에는 힘 조절을 잘 못하셔서 무조건 세게만 치던 분들이 지금은 힘 조절을 하고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며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비장애인과 겨뤄도 전혀 실력 차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에요. 처음에 비해 다들 젊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올해 하반기에 코리아 오픈 슐런대회가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우리 참가자들 모두 참여해서 좋은 결과 얻었으면 합니다.
참가자 인터뷰
한진만(청각장애)
Q. 현재 슐런 교실에 참여하고 계신데요. 참여해보니 어떠세요?
A. 이렇게 지부의 운동 프로그램이 아니면 청각 장애인은 운동하기가 어렵잖아요. 또 격한 운동은 나이 때문에 못하고요. 그런데 슐런은 제약이 없는 운동이라 좋아요.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요. 옆 사람과 겨루면서 긴장도 되고요.
Q. 최근 열렸던 대회에서 입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소감과 앞으로 포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A. 지금까지 두 번 대회에 나갔는데요. 6월 대회에서 제가 4등으로 입상을 했습니다. 기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벅차서 밤에 잠도 안 올 정도였어요. 다음에 또 대회에 나갈 수 있다면 이번에는 1등에 도전하고 싶어요. 나이와 장애를 잠시 잊고 슐런으로 정정당당하게, 멋지게 겨뤄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습니다.